엘리노어 마르크스

엘리노어 마르크스

  • 자 :기타
  • 출판사 :프로메테우스
  • 출판년 :2006-08-05
  • 공급사 :(주)북큐브네트웍스 (2010-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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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노어의 생애는 시대를 지배하는 가혹한 의무감과 내면의 자유가 부딪히는 투쟁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 욕구는 남편 에이블링과 같은 탐욕적 욕망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스스로 실현시키고자 하는 바람이었다. 그녀는 이같은 충돌을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한편,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한 사회주의운동에 몸 바쳐 헌신했다. 이에 반해 에이블링은 기본적으로 사회주의가 인간의 평등을 위한 계급투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사회주의야말로 자신의 이상인 욕망의 공동화라고 믿었다. 이를테면 부르주아적 결혼이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도 여성을 쫓아다니는 자신의 수고가 줄어들 것 같다는 식으로 말이다. 결국 그는 자본주의가 야기한 인간소외 병종 가운데서도 가장 심각한 인격파탄자였으며, 엘리노어는 자신의 헌신적인 사랑과 함께 자본주의 전복을 위한 사회주의 운동이 그의 도덕적 퇴행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었다.



엘리노어의 꿈은 과거의 인공적인 망령에서 벗어나 자연주의적인 새로운 무대를 개척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영국의 사회주의 조직을 지도하고, 그들이 마르크스주의의 이론과 전술을 수용하도록 촉구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남편 에이블링의 사악한 품성은 그녀의 모든 희망을 파국으로 몰아넣었다. 엘리노어 사후에 영국의 사회주의연맹과 많은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사회주의의 메카로 불렸던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런던 사저를 방문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엥겔스가 에이블링의 후견인을 자처했기 때문이었다. 에이블링이 엘리노어의 비참한 최후와 깊은 연관이 있었음이 밝혀지자, 엥겔스의 위상은 순식간에 위축되었었다.



새로운 유토피아를 갈망하며 등장한 전세계 사회주의자들이 최초로 경험했던 절망, 그것은 바로 위대한 사회주의자 엘리노어 마르크스의 죽음이었다. 엘리노어의 죽음은 한마디로 사회주의의 비극이었다. 엘리노어의 비극적인 삶은 페르디난트 라살의 생애처럼, 사회주의자들이 짊어져야 했던 모든 숙명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겪은 고통이 어떤 것이었는가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사실이 베일에 숨겨져 있었다. 어쩌면 엘리노어가 처음 세상의 빛을 본 순간부터, 그녀가 겪어야 할 기나긴 투쟁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사상이든 처음 세상에 태어나면 편견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엘리노어는 아무리 억울한 누명과 가혹한 탄압이 자신을 괴롭히더라도,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는 수밖에 없었다고 언젠가 언니에게 편지 쓴 적이 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우리는 ‘프롤레타리아’에 인생을 바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알고 있었지요.” 요컨대 엘리노어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아버지에게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딸이었다. 지금부터 우리들은 암흑의 시대를 온몸으로 이겨내야 했던 한 인간의 비극을 이해하고자, 그녀의 아버지 칼 마르크스와 엘리노어의 삶의 여정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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