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게 말을 걸다

꽃에게 말을 걸다

  • 자 :백승훈
  • 출판사 :매직하우스
  • 출판년 :2011-04-06
  • 공급사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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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에겐 피는 일도

지는 일도 온몸으로 살아내야 하는 소중한 순간입니다.



꽃에게서 인생을 보다




봄이 왔습니다. 이제 산에 들에 봄꽃이 만발할 것입니다. 봄을 맞이하여 우리는 꽃내음 가득한 에세이집을 준비했습니다.

하루 1000명 이상의 방문객을 자랑하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작가는 꽃을 찾아 10여년을 전국 구석구석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 그 꽃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놓았습니다. 꽃에 아름다움에만 빠졌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작가는 세상에 꽃나무 한 그루 심지 않고 꽃빛만 탐해왔으나 꽃을 보는 동안 조금씩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예전엔 주로 화려한 꽃빛만을 쫓아다녔으나, 보다 짙은 향기만 취하려 애썼으나 들꽃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면서 지상에 피어나는 모든 꽃들이 사랑스러워졌다고 합니다.

한 송이 꽃을 보면 그 꽃의 생애가 짚어지고 그 생애를 짚어가다 보면 인생이 보이기도 합니다. 꽃을 보는 일은 결국엔 내 자신을 돌아보는 일입니다.

거울을 통해 나를 보듯이 꽃을 통해 내 안을 살피는 일입니다.





가시 돋친 말들, 가시 돋친 생각들이 나를 찔러올 때

엉겅퀴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인 엉겅퀴는 온몸에 돋은 날카로운 가시 때문에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꽃입니다. 하지만 보랏빛 꽃 속엔 달콤한 꿀이 많아 벌 나비 같은 곤충들에겐 더없이 친근한 꽃이기도 합니다. 꽃을 찍으려 가까이 다가가면 온갖 곤충들이 꿀을 빨기 위해 꽃술 사이로 박혀 있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온 몸에 가시 돋친 엉겅퀴 꽃밭에서 한나절을 보내며 가시란 무엇일까에 대해 골똘해졌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나무나 풀들이 몸에 날카로운 가시를 내어다는 것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약자의 허장성세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가시나무를 베어내면 새로 돋은 가지엔 더 크고 날카로운 가시가 돋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비록 가시가 많은 나무일지라도 얼마만큼 자라면 가시가 점차 줄어드는 것도 이제 자신을 지켜낼 만큼의 힘이 생겼다는 자신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시 돋친 말들, 가시 돋친 생각들이 나를 찔러올 때 아프다 비명을 지르거나 경계하기보단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상대의 입장을 헤아려주는 아량이 더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벌 나비와 같은 곤충들에게 아낌없이 꿀을 나누어주는 엉겅퀴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나의 향기를 나누어주고 싶습니다.





잡초란 아직 그 가치가 찾아지지 않은 풀일 뿐

고마리




혹시 늦은 여름날 냇가에 나가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처서 무렵, 냇가에 나가보면 여름내 무성해져서 초록의 잎으로 개울물을 덮고 있던 고마리가 희고 붉은 꽃망울을 일제히 폭죽처럼 터트리고 있는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내 어렸을 적엔 돼지들이 잘 먹는다 해서 돼지풀이라고도 불렸던 고마리는 개숫물이 흐르는 하수구나 개울가, 봇도랑을 가리지 않고 습한 땅이나 물이 있는 곳이면 흔하게 만날 수 있는 한해살이풀입니다.

새마을 사업이 한창이던 70년대엔 취로사업으로, 5공 시절엔 하천정비 한답시고 굽은 물길을 직선으로 만들면서 고마리가 때 아닌 수난을 겪기도 했지만 생명력 강한 고마리는 지금도 여전히 하천의 주인 노릇을 하며 이맘때 즘이면 희고 붉은 꽃들을 피워 올려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고마리는 꽃도 예쁘지만 정말 대단한 것은 고마리의 뿌리가 지닌 정화능력입니다. 고마리는 왕성하게 발달된 뿌리를 갖고 있어 줄기가 두어 가지 밖에 안 되는 작은 고마리라도 뽑아 보면 그 뿌리는 제 몸집의 서너 배는 족히 되는 게 다반사입니다. 고마리는 이 발달된 뿌리로 온갖 더러운 것들을 정화하는데 그 능력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고마리가 덮여 있는 200평정도 되는 수로를 거친 물은 하천 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축산 폐수라도 1급수의 깨끗한 물로 간단히 바꾸어 놓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고마리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하천에서는 윗물보다 오히려 아랫물이 더 맑은 경우가 있습니다.

이쯤 되면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옛말도 무색해질 만하지 않습니까?

‘잡초란 아직 그 가치가 찾아지지 않은 풀일 뿐’이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는 겉모습에만 치중하느라 고마리가 그리 고마운 풀인 줄도 모르고 쓸데없는 잡초로 치부해 왔던 것입니다. 크고 화려한 꽃들도 아름답지만 고마리처럼 작고 볼품없어 보이는 꽃들도 묵묵히 제 역할을 해내고 있기에 세상은 정녕 아름다울 수 있는 것입니다. 화려한 꽃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영혼은 맑아지지만 저 작은 꽃의 생애와 뿌리를 헤아려 보는 마음까지 지닌다면 분명 세상은 고마리 숲을 지나온 물처럼 맑고 투명해져서 반짝일 것입니다. 고마리는 우리의 초록 희망이자 미래에의 희망의 풀입니다.





노루귀꽃의 봄꿈

노루귀꽃




부드러운 것이 굳은 것을 이긴다 했던가요. 그 어떤 힘이 있어 저 여린 줄기로 하여금 탱탱 얼어붙은 땅을 비집고 올라와 저토록 부신 꽃빛으로 하늘을 열게 하였을까? 마른 가랑잎이 층층이 덮인 캄캄한 땅속에서 지상의 날들을 꿈꾸는 동안 저들을 견디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들이 두서없이 섞이면서 꽃 위에 얹어 놓은 시선이 몹시도 흔들렸습니다. 꽃의 시간을 헤아리는 일은 어쭙잖은 나만의 감상일 뿐, 손톱만한 노루귀꽃은 낯선 이의 눈길이 부담스러운지 자꾸만 고갯짓을 해댑니다.

화장기 없는 촌 새악시 같은 말간 낯빛의 꽃송이 앞에 다짜고짜 카메라를 들이미는 일은 차마 못할 일. 먼발치에서 바라만 봐도 가슴 두근거리던 첫사랑의 모습처럼 그저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 오는 것을, 그 고운 빛을 욕심내어 카메라를 바짝 들이미는 일은 아무래도 무례하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복수초와 함께 우리나라 봄꽃의 앞자리를 다투는 노루귀꽃은 꽃의 모양새가 아닌 잎의 모양새에서 그 이름을 얻었습니다. 가는 털로 뒤덮인 잎이 피어나는 모습이 쫑긋한 노루의 귀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요. 대부분의 봄꽃들이 그러하듯 잎이 피기 전 여린 꽃대를 밀어 올려 꽃을 먼저 피우고 나중에 잎이 돋는 까닭에 노루귀를 닮은 이파리를 만나려면 조금은 더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합니다.





어찌하여 깨달음은 늘 반 박자 늦게 찾아오는 것인지요.

망초꽃




한낮의 후끈한 열기에 달구어진 풀 비린내가 해거름의 산들바람을 타고 내게로 끝없이 밀려옵니다. 연보랏빛의 싸리꽃이 간간히 눈길을 건네 오는 산길을 벗어나 앞이 훤히 트인 들길로 내려서는데 내 눈길 끝으로 흰 망초꽃이 매달려 왔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너무 흔하게 보아왔던 꽃이어서 오히려 내 안에 접혀진 기억 하나 없는 꽃, 오늘은 그런 망초꽃이 핀 들길이 왠지 눈에 익어 자꾸 마음에 걸렸습니다.

무심히 지나치지 못하고 망초꽃 드문드문 피어 있는 구불한 밭둑에 앉아 털썩 주저앉아 담배 한 대 피워 문 것도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겁니다.

돌각담 위엔 사람들이 놓치고 간 돌나물이 쇠어서 작은 별 같은 노란 꽃송이를 가득 피워달고 배시시 웃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던 건 덤으로 얻은 호사였지요.

망초꽃 바람에 흔들리는 밭둑에 앉아 해지는 풍경을 바라보려니 흐려진 하늘 끝으로 그리운 얼굴 하나 구름처럼 피어났다 사라집니다. 그 얼굴 그리워 나도 모르게 이름 아닌 이름을 입 밖에 내고 말았습니다.

아버지! 내가 낸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이제야 낯설지 않은 풍경의 이유가 설명되어질 듯도 싶습니다.

이 무렵이지 싶습니다. 논두렁 가래질에 모내기에 눈코 뜰 새 없는 농번기여서 아버지는 늘 저문 들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곤 하셨습니다. 어쩌다 그런 아버지를 마중 나가기도 했었는데 그때 아버지는 소에게 먹일 꼴을 한짐 베어 지게에 무겁게 지고 오시다가 밭둑에 지게를 잠시 받쳐 놓고 지금의 나처럼 담배 한 대 피워 물고 해 지는 풍경을 바라보시곤 했드랬습니다.

푸른 담배 연기를 한숨처럼 허공에 흘리시곤 밭둑에 가득 피어난 흰 망초꽃대를 툭툭 건드려 흔들고 계셨습니다. 허리가 휘이도록 일을 해도 육남매 뒷바라지에 숨이 턱턱 막히던 그 시절의 아버지에겐 그렇게 밭둑에 앉아 담배 한 대 피워 무는 일이, 흰 망초꽃대 흔드는 시간이 유일한 휴식의 시간이자 고단한 살이의 여백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저문 들판에 가득 피어난 흰 망초꽃은 아버지가 남 몰래 몰아 쉰 한숨이었을 테지요. 그렇게 숨을 고르시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우리들에겐 언제나 든든한 울타리의 모습으로만 보여지길 바라셨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내가 그 아버지의 모습을 많이 닮아 있습니다. 망초꽃대 바람을 타는 들길을 걸으며 나도 모르게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내 모습에 망연해지고 말았습니다.

어찌하여 깨달음은 늘 반 박자 늦게 찾아오는 것인지요.





어느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세상과 맞서며

때죽나무꽃




가을이 되면 꽃 진 자리에 도토리와 비슷한 열매가 가득 달리는데 그 열매엔 아주 독성이 강한 물질이 들어 있어 옛날에는 그 열매를 찧어서 냇물에 풀어 물고기를 잡았다고 합니다. 저리 고운 꽃이 그처럼 독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 얼핏 낯설게도 느껴지지만 아무리 고운 사람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독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실제로도 때죽나무는 공해에 매우 강하여 최근에 각광을 받기 시작한 나무이기도 합니다. 도심의 숲들이 산성비나 공해 등으로 많은 피해를 입는 와중에도 유독 때죽나무만큼은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며 어린나무들을 키워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공해 지역에서만 잘 자라는 것은 아니고 청정의 숲에서도 잘 자라는 다른 나무에 비해 공해를 이겨내는 힘이 아주 강한 나무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주저앉고 싶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아름다운 꽃을 피워야겠단 생각을 하지만 당장의 힘겨운 삶이 버거워 접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때죽나무를 생각합니다. 어느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순결한 꽃송이를 피워 달고 오월의 숲속으로 종소리를 풀어 놓는 그 꿋꿋함을 생각합니다.





목숨 가진 것치고 눈물겹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민들레




초목들도 자생환경이 아닌 다른 지역에 처음 자리를 잡을 때는 자생식물들과는 거리를 두고 자리를 잡는답니다. 그러니까 자생식물들이 자라지 않는 돌 틈이나 아스팔트의 갈라진 틈, 담벼락 밑이나 보도블록의 틈새 같은 열악한 환경을 택해 싹을 틔우는 거지요.

그렇게 열악한 환경을 택하는 데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다른 식물과 거리를 둠으로써 방해를 받지 않고 햇빛을 고스란히 받음으로써 왕성한 생장을 하여 일찍 꽃을 피워 열매를 맺어 자신의 종자를 보다 많이 퍼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흠모하는 아홉 가지 덕을 갖추었다 하여 구덕초(九德草)란 별칭을 지닌 민들레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꽃잎이 노란 민들레는 옛날부터 우리나라에서 자라던 토종이고 꽃잎이 하얀 민들레는 외래 식물인 서양민들레입니다.

특히 외래식물인 서양민들레는 노란 민들레에 비해 자생능력이 뛰어나 뿌리를 몇 토막으로 잘라 흙에 묻어두면 잘라진 뿌리마다 싹이 돋아 완전한 민들레로 자라난답니다.

노란 색의 재래종 민들레는 자신의 꽃가루받이를 하지 않는 자가불화합성인 반면 서양 민들레는 자신의 꽃가루를 받아 수정하는 자가합성이라 아무리 외진 곳에 홀로 뿌리를 내려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커다란 군락을 이룰 수 있답니다. 생장 속도도 빠르고 개화 시기도 봄부터 가을까지 이어져 종자 생산량이 재래종 민들레에 비해 엄청나다니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내듯 우리의 노란 민들레는 자꾸자꾸 자리를 내줄 수밖에요.

그러고 보면 목숨 가진 것치고 눈물겹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노란 민들레도 다른 식물에 비하면 생장력이나 번식력이 뛰어난 식물인데 서양 민들레는 그보다 더 한 수 위이니 말입니다.

천 년을 넘긴 소나무가 사는 산은 험악하다지요. 열악한 환경일수록 생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해지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꽃잎이 된 잎과 예수님의 사랑

산딸나무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심을 당할 때 바로 그 못을 받아주던 십자가로 쓰였던 나무라 해서 서양에서는 십자가 나무로도 불린다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넉 장의 하얀 꽃잎 끝엔 정말로 못에 찔린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습니다. 참 신기하지요?

한데 저 꽃잎으로 보이는 하얀 이파리는 실은 꽃잎이 아니라 총포가 꽃잎의 모습으로 바뀐 것뿐입니다. 그 중심의 푸르고 노란빛을 띄는 것이 실제 꽃입니다.

산딸나무란 이름은 그 열매가 딸기를 닮았다 해서 ‘산 속의 딸기’를 닮은 꽃이란 뜻으로 붙여진 이름입니다.

꽃을 볼 때마다 나를 감탄케 하는 것은 꽃들은 언제나 최선을 다해 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산딸나무가 벌과 나비를 불러 모으기 위해 잎을 꽃잎으로 바꾸는 일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말이지요.

바람 한 올, 햇빛 한 점, 물 한 방울도 허투로 쓰지 않고 세상에 환한 꽃빛과 맑은 향기를 전하기 위해 애를 쓰는 꽃들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요.



서양산딸나무와는 달리 산딸나무엔 못자국이 없어 쉽게 구별됩니다. 이제 머지않아 이 땅에 초록 기운이 번져가고 봄이 무르익으면 나는 오래 된 습관처럼 또 산딸나무 꽃그늘을 찾아 갈 것입니다. 그리고 꽃들이 전해주는 눈부신 전언들을 벗님들께 전할 것입니다.

봄 들판이 나를 불러줄 그 날을 손꼽으며 오늘 아침도 꽃처럼 환하게 열어 봅니다.





황금범종을 닮은 호박꽃

호박꽃




아주 오랜 옛날 인도에 믿음이 진실한 스님이 계셨는데 그의 소원은 황금으로 된 범종 하나를 만들어 놓고 죽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시주를 받아 황금 범종을 만들기 시작하였지만 동(銅)으로 된 대형 범종을 만드는 일도 쉽지 않은 터에 황금으로 대형 범종을 만드는 일이란 그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음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지요. 결국 그 스님은 종이 채 반도 이루어지기 전에 기력이 쇠잔하여 죽고 말았고 죽어서 부처님 앞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부처님께 생전에 종을 만들던 일을 고하고 그 종을 완성할 때까지만 다시 인간 세상에 살도록 해달라고 간절히 빌었습니다. 그의 진심을 아신 부처님은 다시 그를 인간 세상에 살도록 허락을 해 주셨고 소원대로 환생을 하여 인간 세상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세상은 예전에 살던 세상이 아니었고 그가 만들다 만 종의 행방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부처님께 잠시 다녀오는 동안 인간계에선 벌써 1백년의 시간이 흘러갔던 것이지요. 그리하여 그는 그 종을 찾아 완성하기 위해 바랑을 걸머지고 세상의 구석구석을 떠돌아 다녔는데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자신의 발밑에 자기가 만들던 종 모양을 한 황금빛 꽃이 있어 그 줄기를 따라 땅 속을 파들어 가니 바로 거기에 자신이 만들던 대형의 황금 범종이 미완성인 채로 묻혀 있었습니다. 그는 그 종을 파내어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을 시키고 어떤 소리가 나는가 싶어 쳐 보았는데 종에선 소리 대신 황금빛 꽃이 떨어지면서 누런 황금 열매가 달리는 것이었습니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황금빛 꽃은 호박꽃이었고 황금빛 열매는 다름 아닌 호박이었던 게지요.

그러니까 노란 호박꽃은 한 스님의 불심에 감복하여 부처님이 그 스님으로 하여금 범종을 찾게 하기 위해 만들어 낸 꽃인 셈입니다.

찬찬히 살펴보면 어여쁘지 않은 꽃이 없습니다. 아무리 하찮게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귀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 사이에 담을 쌓아 구분 짓고 마음에 금을 그어 경계를 짓게 만드는 선입견이란 진실로 상대를 이해하는 일에 장애가 될 뿐입니다.

사랑은 상대를 그윽히 바라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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